제19차 외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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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베트남의 하노이와 하롱베이, 그리고 대학살의 현장 킬링필드와 세계7대 불가사의 앙코르왓을
5박6일로 다녀왔다.
여행의 묘미는 눈으로 스치는 시각적 효과보다는 사람과 사람간에 교감을 이어가며 그 나라의 문화,
즉, 음식문화, 언어문화, 생활문화를 통하여 그 나라 그 지방의 생활상을 이해할수있는 실질적인
휴먼네트웍이 아마도 진정한 가치창달의 여행이 될것이리라 생각된다.
특히,
내가 제일 선호하는 세계 오지탐험은 선진국보다는 동,서남아쪽의 후진국이 더욱 매력적으로 나에게 닥아온다.
그래서 나는 서,동남아 10여개국을 가능한한 열심히 누비려고 한다
이번에도 두나라 모두 문명의 혜택이 많이 뒤떨어지는 나라임엔 틀림이없으나,
그중,
베트남같은 경우에는 본의는 아니나 어떠한 방식이든 우리국민들이 자성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피비린내 전장에 참전의 과거가 있다.
왜 하필 오늘따라 쓰라리게 재조명되어 저만치서부터 닥아오는것 같아 한없이 절절한 미안함과,
한편으로 지난날 약소국으서의 서러움을(등떠밀려 참전하는) 부인할수 없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 유적지에 하롱베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3300여개에 옹기종기한 아름다운 섬들은 대자연의 신비를 또한번 일깨워주는
곳이기도 하다(선상에서 먹은 "다금바리"생선회는 맛으로 먹지않고 분위기로 먹을수 있었다)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앙코르왓, 앙코르톰, 프놈바켕, 타프롬 이중 힌두교 사원이 80% ,불교사원이 20%였다한다.
9-15세기 앙코르 왕조가 융성하던 시절에 만들어졌고 왕조가 망하면서 400여년 동안 밀림속에 묻혀있다가 19세기초 유럽의 곤충학자 "앙리 무오"(1826-1861)가 발견하면서부터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앙코르 왓은 본래 "제도의 탑"이라는 뜻이 있다한다.
앙코르 제국이 멸망후 16세기에 불교사원으로 사용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에는 "수르야바르만" 2세의 묘로 지어졋다한다.
3만명의 숙련된 석공이 30년에 걸쳐서 지었으며, 동서 1.3KM 남북1.5KM의 직사각형 이다.
겹겹이 드러나는 회랑, 걸어도 걸어도 들어나는 조각벽을 돌아보는 순간순간 유럽 격조문화 몾지않은 어마어마한 석조건축물들 대리석 보다는 비교적 조각은 쉬웠겠다는 검붉은 사암(沙岩)이라해도 광대하고 정교한 조각미술이며 ,이많은 양들의 돌은 어데서 어떻게 운반 되어젔을까하는 경외감이 돌아보는 내내 끊이질 않았다.
역시 세계7대 불가사의중 하나라는 가이드의 설명으로 충분이 경탄할수 있었다
엄청난 크기와 정교한 조각상들 동서남북 4개의 벽면에는 인도 힌두교의 서사시를 주제로 한 이야기들이 즐비하게 묘사되어 있었으며 곳곳의 천상의미소에 압살라의 여신상이 1560점이 제각각 모습을 달리하니 그저 놀랍기만하다.
신이 살고잇다는 꼭대기 중앙 3층 사당으로 통하는 마지막 40계단이 75도의 가파른 경사를 아루고 있어서 심약한 노약자들은 위험하기 까지 하였고, 후들거리는 하체에 마치 암벽등산을하듯 조심스레 힘겹게 올라가면서도 또다시 이곳을 내려올것이 더욱 까맣게 느껴져 뒤도 돌아볼수없이 걱정이되었으나 그러나 반대편 다른 한쪽의 계단에는 쇠줄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서 크게걱정없이 내려올수있
었다 .
다만,
세계각국에 수많은 관광객들로 30분-1시간정도는 3층 중앙 사당에서 줄을서서 기다려야하는 인내도 필요하였다.
거대한 도성을 뜻하는 앙코르 톰은 한변이 3KM인 정사걱형의 드넓은 부지 중앙에 수미산을 상징하는 바이욘 (금탑)사원이있고 남,북,서쪽에 한개의 문이, 동쪽에 2개의 문이 있다.
다른 사원과 마찬가지로 해자를 통과하는 다리 난간이 "유해교반"(乳海攪伴):우유바다 휘젖기)을 모티브로한다.
한쪽에 54명의 신이있고, 다른 한쪽에는 54명의 악마가 각각 "나가"라고 하는 머리가 7개를 가진 거대한 뱀의 몸뚱이를 붇잡고 있는 형태이다.
(유해교반이란= 남녀 교합상을 우주 창조의 모습으로 표현한 힌두교의 창조신화)
프놈바껭은 언덕의에 지어져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돌계단을 타고 중앙 사당에 도착하니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낙조를 보려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석양무렵 장엄한 앙코르 왓의 낙조를 감상할수 있다고 하는데----
타프롬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톰을 만들기전에 모후의 그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라한다.
할리우드의 영화 " 툼 레이더 " (안제리나 졸리 주연) 의 촬영 무대였기도 하단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뱅골 보리수 계통의 "이앵나무"뿌리가 사원 곳곳을 휘감고 있는 모습이 보는이로 하여금 경탄을 금하질 못한다.
사원을 복원 하려면 나무를 제거 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현장보존등 공사가 엄청나기 때문에 현재는 나무에 성장억제제로 지금의 상태로 놔두고 있다는 얘기이다.
밀림속에 앙코르 왕조가 400년만에 깨어난것이다.
캄보디아 서남쪽에 위치한 시엠립.
인천공항에서 약 6시간 반의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
작년 말부터 국내항공사에서 주 4회 직항으로 운행하기도 한다.
시엠렙은 캄보디아 3대 도시중에 한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주같은 고대도시 도읍지라 할수
있다.
이곳 시엠렙에 동양최대의 담수호수 "똔레샵" 이 있다.
남북으로 길게 놓여있는데 건기에는 (11월-4월) 서울 면적의 5배정도 크기이고,
우기(5월-10월)에는 이보다 3배가 더 늘어나는 호수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다같은 이곳을" 캄보디아의 어머니" 라고 부른단다.
국민의 주식인 생선의 63%를 이 호수에서 잡는단다.
그런데 이곳을 가려면 강변으로 나있는 긴 수상마을을 지나쳐야 하는데 수상에 2M이상의 나무 기둥울 땅에 밖고 서서있는 비가내리면 당연히 줄줄샐겄같은 가옥 구조가 아주 인상적이기도 하다.
우기에 강이 범람하면 언제라도 거주지를 이동해서 벗어났다가 물이 빠지면 또다시 돌아온다.
시뻘건 황토흙물에서 용변도 보고 수영도 하며 식사도 그물로 한단다.
또한,
이들은 21세기 문명과는 거리가 먼 나라에 이방인이라 함이 차라리 옳을것이다.
월남전등 특별한 사정을 간직한 국제고아라고 하는 "보트피풀"로 무국적의 난민으로서
그냥저냥 어찌어찌 생을 부지하기에 바쁜 최하위의 인간 생활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이다.
어쩌다 외국인 들을 발견하면 여지없이 커다란 대야를 타고 달려와 "천원만""완달러"을 외치며
구걸하는 어린 애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것만같이 죄스럽기만 하다.
가난한 서,동남아시아,
어리숙한 국민들은 자의반 타의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매한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기만을 당하면서 죄없이 가난과 기아에 굼주리고 있는것이다.
한나라에 지도자의 능력과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는지라 심히 걱정을 하게 되면서 저 큰 눈망울의 티없이 해맑은 표정에 현지 어린이들을 만난다.
우수에 가득한 큼지막하고 까만눈동자의 아이들은 금방이라도 울움을 터트릴것만 같아서 가슴이
시려오지만, 나는 냉정하게 돌아서야하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한 그애들과 눈을 마주치는것을 피하기도 하지만 정말로 참기어려운 슬픔과 연민에 순간이 많은 시간들이었으며,
군(軍)을 마치고 3학년에 복학한 아들에게 봉사활동의 배낭여행지로 적극 권하고 싶은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밖에 수없이 널려진 문화 유적, 대자연에 묻힌 목재,광물등지하자원의 보고 캄보디아.
그러나 그 귀중함과 소중함을 스스로는 지킬수 없는 무능력의 나라 캄보디아.
어쩌면 한세기 전에 우리나라와 무엇이 달랐을까?
별안간 가슴이 답답함에 심호흡을 길게 한번더 해본다.
그러나,
두나라(베트남과 캄보디아)역시 젊고 건강한 미래들이 자국의 보호를 위한 지극한 노력으로 밝은
앞날의 서광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번 여행은 여느 여행과 달리 유난히 피곤한것 같다.
가난과 문맹에 아픈 현장 탐방이 가져오는 가슴시린 이유도 있겠지반
아마도 유난히 여름을 싫어하는 내가 적도 가까운 곳의 열대성 기후 탓이 아닐까 싶다.
2005/08/01
홍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