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대천 해수욕장

홍석 2012. 11. 27. 16:10

대천해수욕장

2006년 7월 16일 오후 10:05공개조회수 4 0

머드(MUD) 페인팅(진흙 축제)의 대천 해수욕장

국내 유수 해수욕장 중에서도 강원도나 남해 지역이 아니고는 수도권 지역에서 이용도가 거의 으뜸격인 대천 해수욕장을 와이프와 함께 7월 15일 도시락을 싸들고서 정오경 찾아보았다.
나의 젊은 시절에 두어번 이용(?)했었으며 남달리 재미있는 추억이 엮여있는 그곳을 -----

---------------------------------------------------------------------------


약 34-5년여 정도를 거꾸로 거슬러 1971-2년경 아주 뜨거운 성하에 계절쯤 될성싶다

그때만해도 주변에 나무 그늘이라곤 찾아 볼래야 찾을수도 없이 온산이 뻘건 민둥산 이었을 때니까 아마도 한 여름도 요즈음에 여름보다 더욱 뜨거웠던 기억이 난다
어느때 부터인가 국민 생활 수준의 성장과 국가적으로 역점 사업이었던 산림등 녹화사업으로 개발행위시 주택주변,도로가등녹지비율을 의무화하여 기본적으로 법적 적용을 받고부터는 비교적 많이 좋아진 사정이라 하겠다


또한,
어느 누구나를 막론하고 절대빈곤을 벗어나려고 오로직 먹고 살기에 급급한 그당시 분위기였기에 여가생활은 커녕 아무리 먼길도 차비를 아끼려고 (10KM-20KM 정도) 걸어 다니는것이 다반사 였다.

그런시절 ,
실내 풀장은 서울의 특급 호텔 한두군데 정도가 전부였던 시절이었고
더우기 미지에 세계이며 늘- 가보고 싶음으로 갈망하던 푸르른 망망 대해가 눈 앞에 보이고 깨끗하고 하-얀 모래가 끝없이 즐비한 긴해변에 노천 수영장도 요즈음과 같이 흔하지 않아 아마 전국을 통털어 약5-6 여군데 미만 정도가 아니었던가?


70년대초에 장거리 교통수단은단연 열차 여행이다.
그 외에는 안내양과 조수가 동승하는 지방버스(당시 호칭)인데 국도가 거의 8-90%가 비포장이기 때문에 자동차가 수시로 고장나거나 비가 온후 지반이 약한 도로를지나다가 빠져있는 자동차들을 심심찮게 보곤 하는 시절이다.

기차나(증기기관차) 디젤 기관차 중에서도완행열차는 사람들이마치 콩나물 시루속에 빼곡하게 세워진 콩 대가리처럼채워졌으며 자리에 앉아서 있는 승객보다 입석 승객이 더 많았고 서서가거나 통로나 출입구 근처에서 매달려가는둥 옆사람 앞사람에 땀냄새와 잎냄새등 소위 사람 냄새는 일상 생활에서 늘 - 단련된 우리에겐 오히려 거의 친근하기 까지만 했던 시절에 3등 완행열차의 풍경이다.

어렵게 마련한 약간에 돈으로(주로 교통비가 5-60%이고 나머지는 비상금임) 3등 완행 열차에 승차한다.
지방 역마다 몽땅 정차하며 특급이나 급행열차를 먼저 보내야 하는 운명에 특급이나 직행열차와 같은역의 통과 시간이 겹치게 되면 역구내 한켠으로 비켜서서 대기하는 시간등 진행이 지지부진하고잡상인에 호객소리, 시골에서 어쩌다 이동하는 이용객들이 서로를 찾거나 부르는 소리등 차내는 엄청 시끌법석하며 비좁디 비좁은 완행 열차속은 무질서 그 자체이다.(지금에 인도나 중국등 동남아의 지방에 요즘 모습과 흡사함)

우리들도 역시 무더위에 지친 환경에서 어찌어찌 객차와 객차사이를 잇는 통로 부분 한쪽에서 쪼그리고버티고 가다보면더위와 지침에 쏟아지는 졸음에도 마음대로 잠을 청할수가 없다.
간신히 얻은 자리를 지키는것도 중요하지만 열차가 정차할때마다 주변에 술렁임을 힐끔 거리거나 잘보이지 않는 차창 너머에 정차역의 이름을 기웃거려서 예정된 하차 역을 놓쳐서 큰 낭패를 보지않으려고밖에 스치는 환경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되다보면요즈음에 한가로운 휴식의 장거리 여행과는 완전 탄판의 짐짝같은 열차 이동수단에 불과한 사정이었다.

어찌어찌 반나절 만에 가까스로 도착지인 대천역에서꽉찬 열차 통로를 또 한번 비집고 어렵사리 빠져나와 개찰구를 나서서 역전 광장 한켠에서 뒤늦게 밀려나오는 나머지 일행을 기다렸가 합류 하면서부터 낱선 지역의 장거리 여행의 고행은 시작에 불과 하다는것을 그때까지 우린 알리가 없었다 .
물어 물어 초행길로 10 여km (이번에 알았음, 곧게 펴진 현재의 포장도로가 8km라고 이정표에 적혀 있음)의 흙먼지 풀풀날리는 비포장 덜컹이 길을 부지런히 아주 힘차게 걷기 시작한다.

그 때도 내 기억으론 아주 가끔 해수욕장과 군내를 안내양이 동승하여 왕복하는 마이크로 버스(도로사정이 좋지않아 덜컹 거릴때마다 머리가 버스 천정을 치받이는--) 가 통행을 했는데 그 차비를 아끼기위해 도보로걷기시작한다.
나름대로 야영 장비와 며칠분의 주,부식을(부식이래야 쌀과 양파, 감자 그리고 간장, 고추장에 유일한 동물성 버터가 전부) 일행과 나누어 짊어진 채로 오뉴월 땡볕을 두어시간 땀범벅 흙범벅 으로 낑낑거리고 걸어서 가까스로 꿈에 그리던 백사장에 당도하여 처진 어깨에 천근 만근 매달린 짐보따리를 털썩 내동댕이 치고나면 긴긴 한여름에 해도 어느새 사라지고 사방은 어둑어둑거리고 우리들은 이미 다들 기진 맥진 그로기 상태가 되어 넉사자로 들어 누워버린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한시간 남짓 달려 대천 IC에서 좌우로 잘 가꾸어진 가로수가 일열로 길안내를 하는듯한 쭈욱 뻗은 4차선 포장도로를 승용차로 3-4분이면 당도하는 대천 해수욕장 >






<지자체인 보령시에서 역점 관광사업으로 주체하고있는 진흙축제가 마침 7월 15일부터 10일간
의 일정으로 마침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였다>





<마치 바닷물 보다도 더 많을성 싶은 인파, 가족과 그룹,그리고 선남 선녀 인파가 마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것이 덩달아 우리도 그 옛날로 되돌아온듯 착각하게 된 하루였다>


2006/07/15 홍 석
댓글수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