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이슈2

종부세 개편 시나리오 - -

홍석 2018. 7. 3. 08:47


도대체 누가 이토록 싱거운 종부세 개편안 탄생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일까요.


보유세 개혁의 걸림돌은 기재부 관료?

당초 예상보다 후퇴한 정부 개혁안이 나올 때면 비판의 타깃은 대체로 정부부처 관료가 됩니다.

보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관료들 때문에 개혁안이 좌초됐다는 취지입니다.

특히 국가의 재정을 틀어쥐어 막강한 힘이 있는 기획재정부는 개혁을 막는 주범으로 몰리곤 합니다.

이번에도 ‘기재부 책임론’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재정개혁특위 일부 위원들 사이에서는 “기재부에서 너무 설친다”는 기류가 형성돼 있습니다.

재정개혁특위가 기재부 산하가 아닌 대통령 직속임에도 기재부가 세제개편의 주무부처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것을 조정하고 칸막이를 친다는 비판입니다. 이같은 원성에는 ‘원포인트 종부세 증세’, ‘핀셋 증세’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기재부가 논의의 폭을 ‘종부세’로만 좁혔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대표적 예가 ‘선 종부세 개편, 후 재산세 개편’ 기조와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은 국토부의 몫이라는 기재부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지방세인 재산세는 행정안전부 소관이고, 부동산 과세표준인 주택 공시가격·토지 공시지가는 국토부가 주무부처입니다. 재정개혁특위는 재산세 논의는 일단 하반기로 미뤘고, 부동산 공시제도 개선은 국토부에게 미뤘습니다. 복수의 재정개혁특위 위원들은 “전형적인 ‘부처 칸막이’ 공무원 마인드”라고 비판했습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기재부를 비롯한 정부부처 관료들은 “재산세와 부동산 공시제도를 조정하면 워낙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논의를 한정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자료: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쓴 논문 ‘부동산 관련 정책에 관한 두 가지 단상’ 갈무리


고가 부동산 보유자를 타깃으로 한 종부세는 2016년 기준 세수가 1조5297억원 정도입니다.

반면 재산세는 토지나 주택을 갖고 있으면 기본적으로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2016년 세수가 75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부동산 공시제도도 같은 논리입니다. 공시가격·공시지가는 과세표준이면서 동시에 각종 부담금이나 건강보험 등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세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한 기재부 고위관계자가 건넨 짧은 논문 한 편에도 정부 관료들이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교수가 2017년 1월 쓴 논문 ‘부동산 관련 정책에 관한 두 가지 단상’을 보면 이 교수는 “종부세를 무력화시킬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정책기조”라고 주장합니다.

다만 이 교수는 “참여정부가 종부세를 도입할 때 아무런 문제점 없이 완벽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썼습니다.

이 교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종부세율을 낮추면서 사실상 종부세를 무력화했다고 비판하면서도 이명박 정부처럼 은퇴한 1주택자를 고려했어야 했고, 종부세 납세시기를 상속시점까지 연기해 줬다면 반감을 줄였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교수는 논문에서 “과세기준금액을 다시 9억원으로 인상하고 앞서 설명한 것처럼 1세대 1주택 고령자에게 연령별로 다른 세액공제를 허용한 것은 분명 긍정적 변화“라고 썼습니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이 논문을 두고 ‘인사이트(Insight·통찰)가 있는 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단지 종부세 인상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납세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과정관리’ 방법을 제시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정부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

정부 관료들 사이에선 당정의 기조가 ‘핀셋 증세’인데 어떻게 거스를 수 있냐는 말도 나옵니다.

현 정부에서 ‘핀셋 증세’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가장 먼저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7월 세법 개정안이 논의되기 시작했을 때도 당시 우원식 원내대표, 추미애 대표 등은 “초대기업은 전체 신고 대상 기업의 0.019% 수준이고, 초고소득자도 국민의 0.08%”라며 소득세, 법인세 증세가 ‘핀셋 증세’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정이 1년이 지난 지금, 종부세에서도 핀셋 증세 기조를 놓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는 참여정부의 ‘종부세 트라우마’입니다.

종부세 도입으로 참여정부 지지율이 떨어졌고 종부세를 도입했지만 서울 집값을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서울 집값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만 참여정부와 지금은 정책 추진 조건이 다릅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75%를 넘나들고, 종부세를 비롯한 보유세 인상 찬성 여론도 올초까지 60% 안팎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높은 지지율을 흠집내지 않으면서 보유세 인상 찬성 여론을 주도하는 지지층에게 만족감을 주는 방안이 ‘핀셋 증세’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종부세 자체가 이미 ‘핀셋’으로 타깃을 좁힌 것어서 대상자 자체도 적고 과감하게 증세를 하더라도 소비 감소 등 부작용도 적다”며 “그럼에도 종부세도 ‘핀셋 증세’를 하는 것은 지지층에게 종부세 인상 메시지를 전달하되 여론을 반발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자료: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부동산 시장이 정부 의도와는 달리 과도하게 침체돼 부동산 관련 세수가 줄어드는 것을 정부가 걱정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정부가 서울 집값은 잡고 싶어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과도한 침체로 인한 세수 감소는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에서 지난 2월 펴낸 이슈페이퍼 ‘초과세수 주요 원인은 부동산 활황’을 보면 2016년 기준으로 부동산 관련 세수 증가분은 18조원에 달합니다. 세수 증가분은 개인 양도소득세 5조5000억원, 기업 양도차익 2조원, 건설·부동산업 3조원, 취득세 6조5000억원, 지방소득세 1조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현재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서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거둔 초과 세수를 기반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기재부는 초과 세수의 규모와 효과를 알고 있어서 쉽게 부동산 시장을 죽이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시민들의 종부세 인상 요구는 있으니 ‘핀셋’으로 증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정부의 핀셋증세 기조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렇듯 다양하지만, 취재과정에서 접촉한 부동산·조세·불평등 연구자들이 한 목소리를 낸 지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구체적으로 추가 세수를 어디에 쓸 것인지 시민들에게 밝히고 이를 공론화한 뒤 필요한 만큼 적극적 증세에 나섰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핀셋 증세에만 매달리다 각종 재원 마련에 실패하진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